천주교인은 꼭 알아야할 내용 (김장철바오로 옮김)
<질문>
미사 중 말씀의 전례를 할 때 독서 봉독자들이 독서대에 오르면서 어떤 이는 성체를 모신 감실을 향해 묵례를 하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제단에 앉아 계신 사제에게 인사를 하기도 합니다. 누구에게 인사를 하건 큰 잘못은 없겠지만 혹시 특별히 정해진 원칙이 있는 것은 아닌지요?
<이동익 신부의 답변>
독서자가 허리를 굽혀 사제에게 인사를 하거나 혹은 감실을 향해 묵례하는 것과 관련된 특별한 규정은 없지만 그러한 동작이 무의미한 것은 아닙니다. 깊은 절이나 묵례는 무엇보다도 하느님께 대한 감사와 경배의 표시이며, 또한 우리의 겸손한 마음을 드러내는 몸가짐일 뿐더러 더 나아가서는 자기 자신이 지은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보호에 자신을 의탁하는 자세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곧 독서자가 사제에게 깊이 허리를 숙인다거나 혹은 감실을 향해 묵례를 드린다거나 하는 것이 어느 것이 옳고 또 그르다고 구분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라 다만 독서자 자신의 마음 자세를 드러내는 몸가짐이라는 것입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예절은 기품있는 단순성을 지니며, 불필요한 반복이 없는 단순성을 통하여 잘 드러나야 한다”(전례헌장 34항)고 가르치고 있으며, 이에 따라 공의회 이후에는 과거에 성당에서 자주 볼 수 있었던 인사 동작들이 많이 없어진 것만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그러한 경례의 동작들이 공의회 이후에도 여전히 그 의미와 가치를 갖는다는 것에는 이의가 없습니다.
독서자의 그러한 동작들이 독서자 자신의 마음 자세를 드러내는 것이라고 한다면 독서자에게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독서를 듣는 신자들을 위하여 성실하게 준비하는 자세입니다. 곧 독서자는 미리 봉독할 성경 구절을 읽고 묵상하여 교우들이 말씀을 들으면서 성경에 대한 감미롭고 생생한 감동을 느낄 수 있도록 성실하게 영신적으로 잘 준비해야 하며, 또한 미사에 참여하는 회중들이 독서의 말씀을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읽는 기술을 잘 습득하는 기술적 준비에도 소홀해서는 안됩니다.
(미사경본 총지침 55항, 66항 참조)
이렇게 독서자에게 있어서는 자신이 봉독하게될 하느님 말씀을 미리 잘 준비함으로써 그 말씀을 듣게될 회중들에게 하느님께 대한 생생한 감동을 전달하는 임무에 충실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이러한 임무의 수행을 위해서 하느님께 겸손한 마음으로 자신을 낮추면서 하느님께 의탁하는 자세 또한 독서자에게 요구되는 마음의 자세일 것입니다. 곧 독서자의 이러한 마음 자세가 그리스도를 대리해서 제사를 봉헌하는 사제나 혹은 감실을 향해 깊은 절을 하는 독서자의 동작을 통해 표현된다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동익신부의 답변이 어정쩡하며 규정에도 없는 신부 개인한테의
공경을 묵시적으로 인정하는 듯한 표현>
<본인의 반론>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만을 향해 절을 하면서 흠숭의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감실 또는 집전사제에게 절을 하더라도 무방하다"라고 정리 하였는데 그렇게 애매하게 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제대 외의 어느 곳을 향해 절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가톨릭의 중심은 미사이고 미사의 중심은 제대"임을 간과해서는 아니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독서 봉독자는 독서대를 향해 가면서 먼저 제단 밑에서 제대를 향해 절을 하면서 흠숭의 예를 갖춘 다음, 독서대에서 성경을 향해 절을 하면서 흠숭의 예를 갖춥니다. 그 순간은 하느님이 성경 안에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독서가 끝난 후 성경을 향해 절을 하고 제단 밑에서 다시 제대를 향해 절을 하고 자리로 되돌아 갑니다. 같은 한국천주교회 내에서도 각 성당별로 또는 각 봉독자별로 다르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견해입니다. 어떤 이는 미사 집전사제를 향해 절 하는 봉독자도 있고 십자가를 향해 절 하는 봉독자도 있고 감실을 향해 절 하는 봉독자도 봤습니다만 이는 전부 잘못입니다.
○글쓴이-선교사 엄성웅 빈첸시오○
1. 깊은 절을 해야 하는 때
미사전례 중에 깊은 절로 하느님께 흠숭(欽崇. 라 Adoratio, 영 Worship, 하느님께만 드릴 수 있는 최고의 예배 행위)의 예를 갖추는 시점은 다음과 같다.
① 말씀전례 중의 신앙고백(信仰告白)에서 사도신경을 외면서 밑줄 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께 잉태되어나시고”라고 기도드릴 때 제대를 향해서 1회.
② 성찬전례 중의 봉헌(奉獻. 라 Oblatio/Offerenda, 영 Dedication/Oblations)에서 제대(祭臺) 앞에 놓여있는 봉헌함으로 가서 봉헌하기 전에 제대를 향해서 1회.
③ 성찬전례 중의 성찬제정(聖餐制定)과 축성문(祝聖文) 예식 때 미사 집전사제가 주님의 몸인 성체(聖體. 라 Eucharistia, 영 Eucharist/Blessed sacrament)를 성반(聖盤. 라 Patena, 영 Paten)에 내려 모신 후와, 성혈(聖血. 라 Sanguis pretiosissimus, 영 Precious blood)이 담겨져 있는 성작(聖爵. 라 Calix, 영 Chalice)을 차례로 제대 위의 성체포(聖體布. 라 Corporale, 영 Corporal)에 내려 모심으로써 성변화(聖變化. 라 Transsubstantiatio, 영 Transubstantiation)가 일어난 후에 제대(祭臺. 라 Altare, 영 Altar)를 향해서 각 1회(총 2회).
⇒ 복사(服事. 영 Altar boy, 프 Servant du missionnaire)가 첫 번째 미사 종을 치면 깊이 숙이고, 두 번째 종을 치면 고개를 들면서 성체 또는 성혈(성작 안의 성혈)을 우러러보며 예를 갖춘 후에 성반 및 성체포에 닿음으로써 성변화가 일어난 다음 깊은 절을 한다.
↳ 성변화 이전 또는 변화 중에 흠숭의 예(禮)를 표하지 않는다. 즉 절을 해서는 안 된다.
④ 성찬전례 중의 영성체예식(領聖體禮式)에서 사제·수녀 또는 평신도 성체분배자가 성체를 들어 올려 모시면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기 이전에 성체를 향해서 1회.
⑤ 마침예식 중의 파견(派遣. 라 Missio, 영 Mmission)에서 미사(라 Missa, 영 Mass)를 집전하는 사제가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합시다”라고 할 때에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화답하며 제대를 향해서 1회.
♣ 위와 같이 모든 미사전례에서의 깊은 절을 하는 횟수는 총 6회이다.
↳ 단, 평일미사 때는 위 1항의 말씀전례에서 신앙고백(信仰告白, 사도신경)과 위 2항의 봉헌행렬이 없으므로 평일미사 때에 깊은 절을 하는 횟수는 총 4회이다.
♣ 위의 4항(성찬전례 중의 영성체예식에서 성체분배자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외치는 때)만 성체(聖體)를 바라보고 깊은 절을 하며, 나머지(위 1·2·3·5항)는 그리스도가 현존하시는 전면 중앙의 제대(祭臺)를 향해 절을 해야 한다.
♣ 위 규정 외의 예식 중에는 절을 하지 않는다.
※ 성찬전례에서 평화예식 중에 집전사제가 “평화를 빕니다”라고 할 때에 집전사제와 교우들은 서로 “평화를 빕니다”라고 인사하면서 온 인류를 위해 평화와 일치를 간구(懇求)하고 하나의 빵을 나누기에 앞서 그들 사이에 서로의 사랑을 표현한다.
↳ 이때 나누는 평화기원의 인사는 제대(祭臺) 즉 그리스도를 향해 바치는 흠숭의 예절이 아니다(집전사제와 교우들은 서로 묵례·합장·악수 등으로 알맞게 인사를 나눈다).
? ‘깊은 절’은 허리와 머리를 천천히 그리고 깊숙이 숙이면서 절대자(絶對者)이신 주님께 흠숭(欽崇)의 예(禮)를 갖추는 행위이다.
2. 성체(聖體. 라 Eucharistia, 영 Eucharist)를 영(領, 받아먹는 것)하는 자세
① 성체(聖體)를 영(領)하려는 신자는 성체분배자 앞에서 오른손 손바닥 위에 왼손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겹친 후에 앞으로 내밀어서 겸손하게 성체를 받는다.
② 성체분배자(사제·수녀 또는 교구장 주교로부터 권한을 위임 받은 평신도)가 성체를 높이 올려 모시면서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외치면 히브리어 ‘아멘’(히 Amen, 진실로 그 내용과 같이 되기를 원한다는 뜻)을 큰소리로 응답하면서 받아 모신다.
↳ 성체분배자(聖體分配者. 영 Extraordinary ministers of holy communion)가 누구이든 동일한 은총이다. 이는 대사제(大司祭)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사도들의 후계자인 교구장주교(敎區長主敎. 라 Episcopus dioecesanus, 영 Diocesan bishop, 교구를 사목할 책임을 맡은 이로 주교품을 받은 고위 성직자)로부터 성체분배권을 위임받았기 때문이다.
③ 성체를 받은 다음, 두 발짝 옆으로 움직여서 오른손으로 조심스럽게 집어 성체를 영(領)한 후에 제대(祭臺. 라 Altare, 영 Altar)·감실(監室. 라 Tabernaculum, 영 Tabernacle, 독 Tabernakel)·십자가상(十字架象) 등 어느 곳을 향해서도 경배(敬拜. 영 Adoration, 공경의 뜻을 나타내려고 하는 인사)를 하지 않는다.
↳ 그 이유는, 이미 자신의 영육(靈肉) 안에 주님의 몸을 모신 상태이기 때문이다.
☞ 영성체(領聖體. 라 Communio, 영 Holy communion, 독 Kommunion) 규정은 1일 2회에 한하여 성체(聖體)를 영(領)할 수 있다(교회법 제917조 참조). 그러나 미사참례의 횟수는 무제한 가능하다. 영성체를 1일 2회로 제한한 것은 성스러운 하느님의 몸을 받아 모시는 행위자체가 의례적이거나 또는 소홀하게 여김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다.
? 영성체란 예수 그리스도(라 Jesus Christus, 영 Jesus Christ)의 몸인 성체를 받아먹는 것이며, 이때에 하느님과 일치하고 또한 신자들과도 일치를 이룬다.
3. 미사참례 자세
① 앉아있을 때는 양손의 손가락을 끼고 주먹을 만든 다음, 왼손의 엄지손가락 위에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겹쳐서 십자표시를 만든다.
② 설 때는 양손의 손바닥을 합장(合掌)한 다음, 왼손의 엄지손가락 위에 오른손의 엄지손가락을 겹쳐서 십자표시를 만든다.
③ 다리는 앉아있을 때나 서 있을 때는 항상 가지런히 하고 똑바른 자세를 취해야한다.
↳ 다리를 꼬거나 허리나 머리를 뒤로 젖히는 등 불량한 자세를 취해서는 안 된다.
☞ 성전(聖殿. 라 Templum, 영 Temple)의 중앙을 지나칠 때는 몇 번이라도 중앙제대(中央祭臺, 제단)를 우러러보며 깊은 절을 함으로써 흠숭(欽崇)의 예(禮)를 표해야 한다(장궤를 해야 함이 옳지만 선 자세에서도 무방하다). 다만 영성체 직후의 순간에는 하지 않는다(자신의 영육 안에 주님을 받아 모신 상태이기 때문이다).
{전례동작(典禮動作)과 자세의 의미}
㉮ 서있는 자세 : 존경을 표현하는 자세이다.
↳ 깨어있고 준비하는 자세·활동에 임하는 자세·감사의 자세 그리고 믿음과 희망으로 종말(終末. 라 Finis mundi, 영 End of the world)을 기다리는 자세를 의미한다.
⇒ 그리스도께서 죽음에서 일어나 부활하셨음을 상징하는 부활과 기쁨의 표지이다.
㉯ 앉는 자세 : 바른 몸가짐이며 정성이 담긴 기대와 주의력의 자세이다.
↳ 올바른 자세로 앉는 것은 바른 몸가짐을 나타낼 뿐 아니라 정성이 담긴 기대(企待) 와 주의력(注意力)으로 가득 차 있음을 의미한다.
⇒ 말씀을 듣고 새길 수 있도록 편하고 잠잠한 태도를 취하게 할 뿐 아니라 말씀과 노 래와 음악에 주의를 기울이도록 도와주며, 묵상(黙想. 라 Meditatio, 영 Meditation)과 관상(觀想. 라 Contemplatio, 영 Contemplation)에 효과를 더해준다.
㉰ 무릎 꿇는 자세 : 하느님에 대한 자신의 낮음을 인정하고 자비(慈悲. 영 Compassion, 크게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를 구할 때 취하는 자세이다.
↳ 무릎을 꿇어 기도하는 자세는 하느님 앞에서 자신의 미약함을 드러내고 참회와 흠숭의 마음을 드리며 애절하게 간구(懇求)하고 있음을 드러내는 자세이다.
㉱ 고개를 숙이거나 허리를 굽히는 자세 : 하느님께 대한 공경(恭敬. 영 Respect)과 겸손한 탄원(歎願)·존경심(尊敬心)·참회(慙悔. 영 Penitence) 및 무엇을 청할 때의 자세이다.
㉲ 장궤(長跪. 라 Genuflexio, 영 Genuflexion) :
몸을 똑바로 세운 채 오른쪽 무릎을 꿇거나 혹은 두 무릎을 다 꿇은 자세로 존경을 나타내는 행위를 ‘장궤’라 한다.
⇒ 오른쪽 무릎만 꿇는 것은 성체가 모셔진 감실 앞을 지나갈 때 성체에 대한 흠숭(欽崇)의 표현이다. 또한 최근에는 거의 실행되지 않지만 교황(敎皇)·추기경(樞機卿)·주교(主敎) 등 고위 성직자들에 대한 존경의 표현이다.
↳ 관습적으로 주교의 반지에 입맞춤 할 때에도 한쪽 무릎을 꿇게 된다.
⇒ 두 무릎을 다 꿇는 것은 성체에 대한 합당한 존경의 표현이며, 미사 중의 거양성체(擧揚聖體. 라 Elevatio, 영 Elevation in the mass) 때에도 행해진다.
-평신도선교사 엄성웅 빈첸시오-
<질문>
성서봉독을 위해 단상으로 올라갈 때 제대, 십자가 또는 신부님 어느쪽에 인사드리는 것이 올바른 전례인지 알고 싶습니다.
<조학균 신부(예수회, 전례학 박사)의 답변>
미사 전례에 참여하는 많은 교우들이 혼란을 갖고 있는 것 중에 하나가, 독서하러 갈 때 어디에 절을 하느냐 하는 문제다. 교우들은 제대와 감실, 독서대 그리고 주례 사제 중 어디를 향해 절을 해야 하는지 의문을 갖는다. 물론 저마다 합당한 의미가 있다. 그렇지만 교회 가르침을 말하자면 미사의 중심인 ''제대를 향해 절을 해야 한다''가 정답이다.
<본인의 반론>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제대만을 향해 절을 하면서 흠숭의 예를 갖추어야 합니다.
조학균 신부는 "제대와 감실, 독서대 그리고 주례 사제 중 어디를 향해 절을 하더라도 나름대로 합당한 의미가 있지만 미사의 중심인 ''제대를 향해 절을 해야 한다''가 정답이다"라고 정리 하셨는데 그렇게 애매하게 하면 문제가 있습니다. 제대 외의 어느 곳을 향해 절을 해서는 아니됩니다. "가톨릭의 중심은 미사이고 미사의 중심은 제대"임을 간과해서는 아니됩니다.
좀더 구체적으로 정리하면, 독서 봉독자는 독서대를 향해 가면서 먼저 제단 밑에서 제대를 향해 절을 하면서 흠숭의 예를 갖춘 다음, 독서대에서 성경을 향해 절을 하면서 흠숭의 예를 갖춥니다. 그 순간은 하느님이 성경 안에 와 계시기 때문입니다. 독서가 끝난 후 성경을 향해 절을 하고 제단 밑에서 다시 제대를 향해 절을 하고 자리로 되돌아 갑니다. 어떤 이는 미사 집전사제를 향해 절 하는 독서 봉독자도 있고 십자가를 향해 절 하는 독서 봉독자도 있고 감실을 향해 절 하는 독서 봉독자도 봤습니다만 이는 전부 잘못입니다.
판공성사에 대하여
교회는 신자들에게 영적인 유익을 위해서 자주 고해성사를 하라고 가르친다. 고해성사를 통해 자신을 성찰함으로써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갈 수 있기 때문이다. 1215년 제4차 라테란 공의회는 부활절에 맞춰 모든 교우들이 고해성사를 적어도 1년에 한 번씩 할 것을 권고하였다. 이러한 전통은 계속 전승되어 모든 신자들이 의무적으로 행해야 하는 성사규범으로 발전하였고 이는 현행 교회법에도 명문화되어 부활고해성사의 형태로 남아 있다(교회법 989조).
한국천주교회 역시 이러한 전통을 받아들였다. 성교사규(聖敎四規)라는 17세기 중국에서 발간 된 교리서에는 1년에 한 번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할 고해성사를 판공성사 또는 사규성사라고 하였는데, 이 책이 한국에 전해지면서 판공성사라는 명칭이 한국교회에 정착되었다.
초창기 한국교회에서는 신자들의 영적인 성장을 돕기 위해 찰고(察考)와 판공(判功)을 함께 하였다. 찰고란 본당 사제가 관할 신자들 가정의 신앙생활, 가정형편 등을 파악하면서, 기도생활, 성서와 전례 등의 교리지식 습득 정도를 시험하는 것을 말한다. 또 판공이란 노력한 성과를 본당신부에게 판단받는다는 의미로서 찰고와 함께 하는 고해성사를 일컬었다. 이러한 관습이 1년에 2차례, 성탄과 부활 전에 거행되었는데 현재 찰고는 ‘문제집’형태로 바뀌었고 오직 판공성사만이 남게 되었다.
판공성사는 통상 고해성사와 똑같지만 성사표가 발행된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사표를 발행하는 것은 고해성사를 강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전례력의 핵심이 되는 성탄과 부활축제를 잘 준비함으로써 바람직한 신앙생활로 교우들을 이끌기 위한 교회의 배려이다. 또한 판공성사표를 집계함으로써 오랜 기간 성사를 보지 않거나 냉담한 교우들을 파악하여 사목적인 배려를 하기 위한 제도이다. 소속본당이 아닌 다른 곳에서 성사를 보았거나, 부활이나 성탄을 전후로 고해성사를 보았다면 판공성사와 같은 효과를 지니므로 성사표를 본당 사무실에 제출하면 된다.
판공성사도 고해성사와 똑같이 하느님께 사랑을 고백하는 적극적인 신앙행위이다. 그럼에도 많은 신자들이 하지 않거나 형식적으로 임하곤 한다. 잦은 고해성사로서 자신을 성찰하는 것은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 매우 중요한 일이다. 고해성사를 통해서 우리는 하느님과의 거리를 점점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판공성사는 고해성사의 통상양식으로 거행되어야 한다. 판공성사 때에 신자들이 많다는 이유로 어린이들과 노인들에게 일괄적으로 공동고백과 공동사죄를 하는 것은 교회의 전승과 전례법에 맞지 않는다. 그것은 전쟁과 같은 매우 예외적인 순간에 사용할 수 있는 예식이며 그 경우도 교구장의 허락을 받아야 한다. 또한 공동고백과 공동사죄의 형식으로 고해성사를 한 신자는 추후에 개별적으로 그 죄를 다시 고해해야 한다. 모든 신자들은, 어린이와 노인을 모두 포함하여 개별적으로 사제를 만나 하느님께 내밀하고 진솔한 사랑고백을 할 권리가 있으며 그 자리가 고해성사인 것이다.
이완희 신부(주교회의 전례위원회 총무)